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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32026-07-16지난 호 보기

흰 상자의 계보

바우하우스·울름·브라운·애플 — 백 년을 건너온 디자인 원칙 하나

이어지는 이야기 7편읽는 시간 약 11분

바우하우스 선언문
이야기 시작

1919년 바이마르에서 발터 그로피우스가 쓴 선언문 한 장이 있다. 예술과 공예를 하나로 묶자는 말이었을 뿐, '기능'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그 학교는 나치에 의해 폐교됐고, 원칙은 사람들과 함께 흩어졌다. 스무 해 뒤 울름에서, 저항운동으로 처형된 남매의 누나가 그 원칙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한 청년 디자이너가 브라운이라는 가전회사에서 흰 라디오와 계산기 몇 개를 만들었다. 그 흰 상자들은 반세기 뒤, 애플이라는 회사의 흰 이어폰과 계산기 앱 아이콘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한 장의 선언문에서 손바닥 위의 기기까지, 원칙 하나가 건너온 거리를 되짚어본다.

01

성당을 그린 선언문

1919년 4월, 바이마르.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미술아카데미와 공예학교를 합쳐 슈타트리헤스 바우하우스를 세운다. 선언문의 표지는 화가 라이오넬 파이닝어가 새긴 목판화였다. 뾰족한 첨탑 세 개가 빛줄기를 뿜는 성당. 그로피우스는 이 선언문에서 조각과 회화와 응용미술과 수공예를 계급 구분 없는 하나의 길드로 다시 묶어내자고 했다. 예술과 공예를 나누는 벽을 허물고, 함께 새로운 건축을 향해 나아가자는 말이었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이 선언문 어디에도 '기능'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훗날 사람들이 '바우하우스적'이라 부르게 될 산업적 기능주의, 장식을 걷어내고 쓰임에만 집중하는 그 태도는 1919년의 이 문서에는 아직 없었다. 첫 선언은 오히려 표현주의적이고 낭만적인 언어에 가까웠다. 학교가 실제로 기능과 대량생산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몇 해가 지난 뒤의 일이다. 지금 우리가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에서 떠올리는 흰 벽과 유리, 군더더기 없는 형태는 창립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선언문은 예술과 공예를 하나의 길드로 묶자고 했을 뿐, '기능'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소장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베를린) ·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1919년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Dezeen — Walter Gropius: the ideas man who founded the Bauhaus school · Dezeen / The Bauhaus: The Idea Behind the School and Its Educational Programme · Bauhaus-Archiv / Museum für Gestaltung

02

게슈타포가 닫은 문

바우하우스 데사우 교사
바우하우스 데사우 교사 · 발터 그로피우스 설계

바우하우스는 1925년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옮겨 오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이 유리와 콘크리트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1931년 데사우 시의회에서 나치당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이듬해 학교를 닫으라는 압박이 시작된다. 나치는 바우하우스를 '퇴폐 예술'의 온상으로, 유대계와 국제주의에 물든 좌파 지식인들의 소굴로 몰아붙였다. 1932년 말, 당시 교장이던 미스 반데어로에는 사비를 들여 베를린의 낡은 공장 건물을 빌려 학교를 사립으로 이어간다. 열 달 동안은 별다른 방해 없이 수업이 계속됐다.

하지만 1933년 4월 11일, 새 나치 정부의 지시를 받은 베를린 경찰이 그 건물마저 폐쇄한다. 창립 14년 만에, 바우하우스는 스스로 문을 닫는 형식을 취하며 사실상 강제로 사라졌다. 교수와 학생들은 미국과 스위스, 이스라엘 등으로 흩어졌고, 그들이 가르치던 원칙만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학교라는 몸은 사라졌지만, 그 원칙은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라는 몸은 사라졌지만, 흩어진 사람들을 따라 그 원칙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장 바우하우스 데사우 (데사우-로슬라우, 독일) · 유네스코 세계유산, 1926년 준공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Wikipedia — Bauhaus (Dessau 시의회 나치당 다수 획득과 1933년 4월 폐쇄 경위) · Wikipedia / The Bauhaus in Exile: What Happened After its Closure in 1933 · Bauhaus-Archiv / Museum für Gestaltung

03

폐교 이후, 울름에서 다시

울름조형대학(HfG Ulm) 교사
울름조형대학(HfG Ulm) 교사 · 막스 빌 설계

1953년, 폐교로부터 20년이 지난 독일 울름에서 새 디자인 학교가 문을 연다. 세운 사람은 잉게 아이허-숄, 그의 남편 오틀 아이허, 그리고 바우하우스 출신의 막스 빌이었다. 잉게 아이허-숄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는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된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의 손위 누나였다. 백장미 저항운동을 다룬 최초의 책을 1952년에 쓴 사람도 그였고, 학교의 재정을 끝까지 붙들어 세운 것도 그의 몫이었다. 막스 빌은 초대 학장을 맡았을 뿐 아니라 학교 건물까지 직접 설계해 1955년 완공시켰다.

울름은 스스로를 바우하우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고 여겼다. 예술과 공예와 기술을 통합하려 했던 바우하우스의 구도에 사회학·심리학·시스템 이론까지 끌어들여, 디자인을 더 급진적으로 방법론화한 학교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1955년, 한스 구겔로트가 울름 학생들과 함께 브라운의 새 제품을 디자인해 뒤셀도르프 라디오 박람회에서 화제를 모은다. 바우하우스에서 울름으로, 그리고 울름에서 한 가전회사로 원칙이 건너가는 순간이었다. 이 학교 역시 오래가지는 못했다. 1968년, 주 정부가 재정 지원을 끊으면서 15년 만에 문을 닫는다. 바우하우스가 그랬듯, 울름도 정치적 압박 속에서 사라졌다.

울름은 바우하우스의 재현이 아니라, 그 원칙을 사회학과 시스템 이론까지 끌어들여 급진화한 학교였다.

소장 HfG-아카이브 · 울름 박물관(Museum Ulm), 독일, 1953년 설립·1955년 준공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Wikipedia — Ulm School of Design · Wikipedia / Ulm school: The methodological revolution of design (1953-1968) · Hart Design Selection / Wikipedia — Inge Scholl (백장미 저항운동과 HfG Ulm 설립 경위) · Wikipedia / Hans Gugelot. The Architecture of Design at the HfG-Archiv, Ulm · smow Blog

04

23살 인테리어 디자이너

SK4 포노주퍼(백설공주의 관)
SK4 포노주퍼(백설공주의 관) · 한스 구겔로트 · 디터 람스 · 빌헬름 바겐펠트

1955년, 스물세 살의 디터 람스가 건축가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브라운에 입사한다. 처음 맡은 일은 제품 디자인이 아니라 사무 공간과 전시장을 새 디자인 방향에 맞게 고치는 일이었다. 브라운은 그 무렵 울름조형대학과 손잡고 제품 언어 자체를 바꾸는 중이었다. 이듬해인 1956년, 람스는 한스 구겔로트, 빌헬름 바겐펠트와 함께 라디오와 턴테이블을 하나로 합친 SK4를 내놓는다.

원래 설계는 금속 뚜껑이었다. 그런데 음량을 높이면 뚜껑이 덜걱거렸다. 람스는 당시 막 나온 신소재인 아크릴로 뚜껑을 바꾸자고 제안했고, 투명한 뚜껑 아래로 레코드판이 그대로 비쳐 보이는 라디오가 탄생했다. 사람들은 이 투명한 관 같은 모습에 '백설공주의 관'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지금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실물의 전시 라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디자인: 한스 구겔로트와 디터 람스, 울름조형대학.' 브라운 제품에 울름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첫 순간이었다.

덜걱거리는 소리를 없애려 새로 쓴 재질 하나가, 라디오에 '백설공주의 관'이라는 별명을 남겼다.

소장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 1956년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MoMA — Dieter Rams, Hans Gugelot. Radio-Phonograph (model SK 4/10). 1956 · MoMA / Snow White's Coffin SK4 designed by Rams, Gugelot and Wagenfeld · Braun Audio / Wikipedia — Dieter Rams (1955년 입사, 1961년 수석 디자이너 경위) · Wikipedia

05

포켓 속의 라디오

T3 포켓라디오
T3 포켓라디오 · 디터 람스 · 울름조형대학

1958년, 브라운은 최초의 포켓형 트랜지스터 라디오 T3를 내놓는다. MoMA의 소장품 크레딧은 이렇게 적혀 있다. '디터 람스, 울름조형대학, 독일.' 브라운 소속 디자이너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학교 이름이 함께 올라간 크레딧이다. 이듬해와 그다음 해에는 형제뻘 모델인 T4와 T41이 이어졌다. 셋 다 흰 몸체에 원형 다이얼, 격자무늬 스피커 구멍이라는 같은 문법을 공유했다.

1961년, 람스는 입사 6년 만에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 그는 자신이 몸담은 세계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디자인은 정말 좋은 디자인인가.' 그가 본 세상은 '형태와 색채와 소음이 뚫을 수 없이 뒤엉킨' 곳이었고, 그 혼란에 자신도 일조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1976년 12월, 그는 뉴욕의 Vitsœ에서 이 고민을 담은 강연을 한다. 여기서 다듬어진 생각이 훗날 '좋은 디자인 10계명'으로 정리된다. 그 바탕에 놓인 말이 'Weniger, aber besser', 곧 '적게, 그러나 더 낫게'다. 람스는 이 말을 목수였던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고 전해진다.

적게, 그러나 더 낫게 — 목수였던 할아버지의 말이 디자이너 손자의 원칙이 됐다.

소장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 1958년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MoMA — Dieter Rams, Hochschule für Gestaltung, Ulm, Germany. Pocket Radio (model T3). 1958 · MoMA / What is 'Good' Design? A quick look at Dieter Rams' Ten Principles. · Design Museum (London) / Good design — Weniger, aber besser의 유래 · Vitsœ

06

계산기 하나로 남은 철학

ET66 계산기
ET66 계산기 · 디터 람스 · 디트리히 루브스

1987년, 람스는 동료 디자이너 디트리히 루브스와 함께 계산기 ET66을 만든다. 검은 몸체에 둥근 버튼, 숫자는 검정으로 연산 기호는 갈색으로, '=' 버튼만 노란색으로 구분한 배열이었다. 장식은 없고, 손가락이 닿는 자리마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이 계산기는 '적게, 그러나 더 낫게'라는 원칙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며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의 디자인 큐레이터 클라우스 클렘프는 이런 브라운 제품들을 두고, 반세기 전에 디자인된 것들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그가 꼽은 조건은 내구성 있고, 사용하기 쉽고, 스스로 설명이 되고, 환경친화적이면서, 무엇보다 대단히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T66은 그 조건을 20세기 안에서 충족시킨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십 년도 더 지난 뒤, 이 계산기의 버튼 배열과 색 대비는 아이폰의 계산기 앱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지적을 여러 매체로부터 받는다. 이후 아이폰 계산기 앱의 디자인은 조금씩 수정됐지만, 처음의 유사성은 이미 널리 회자된 뒤였다.

덜어낸 계산기 하나가, 이십 년도 더 지나 다른 회사 화면 속 아이콘으로 다시 나타났다.

소장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A, 런던) 소장, 1987년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V&A — ET66 Calculator | Dietrich Lubs | Dieter Rams · Victoria and Albert Museum / Interview with Prof. Dr. Klaus Klemp on the work of Dieter Rams · Stylepark / Iconic calculator that inspired an iPhone app is re-released · Creative Bloq

07

다시, 흰 상자로

아이팟(1세대)
아이팟(1세대) · 조너선 아이브 · 애플 산업디자인팀

2001년 애플이 내놓은 아이팟은 흰 몸체와 둥근 다이얼로 T3를 떠올리게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다만 정확히 따지면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하다. 클릭 휠로 메뉴를 돌려 넘기는 조작 방식 자체는, 애플 마케팅 담당 필 실러가 눈여겨봤던 뱅앤올룁슨의 전화기 베오콤 6000에서 왔다는 취재가 있다. T3에서 물려받은 것은 휠의 작동 원리가 아니라, 장식을 걷어낸 흰 상자라는 태도 쪽에 가깝다. 지금 이 아이팟 1세대는 '조너선 아이브, 애플 산업디자인팀. 2001년' 크레딧으로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아이브는 소피 로벨이 쓴 람스의 공식 전기 서문에서, 자기 부모님 집에 처음 들어온 브라운 제품이 시트로매틱 착즙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람스가 그토록 많은 제품군에 걸쳐 자신의 철학을 한결같이 구현해낸 것을 두고 '숨이 멎을 정도(breathtaking)'라고 표현했다. 람스 쪽에서도 화답이 있었다. 2009년 다큐멘터리 《오브젝티파이드》에서 그는 애플을 자신의 10원칙대로 디자인하는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로 꼽았다. 2011년 새 책 출간을 앞둔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애플은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뤄냈다. 제품의 힘만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게 만드는 것 말이다. 나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배급을 받으려 줄을 서야 했다.' 감독 게리 허스트윗은 2018년, 브라이언 이노가 음악을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 《람스》를 만든다. 이 영화는 애플과의 인연만이 아니라, 람스 자신이 오래도록 품어 온 과잉 소비에 대한 우려까지 담아냈다. 바이마르에서 시작된 원칙 하나가, 백 년 가까이 흘러 손바닥만 한 기기 안에 도착해 있다.

애플은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뤄냈다. 나는 전쟁이 끝난 뒤 배급을 받으려 줄을 서야 했다.

소장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 2001년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MoMA — Jonathan Ive, Apple Industrial Design Group. iPod. 2001 · MoMA / Apple's Inspiration For The iPod? Bang & Olufsen, Not Braun · Fast Company / Jonathan Ive 인터뷰 — 시트로매틱 MPZ2 회고와 'breathtaking' 평 · rams-foundation.org / An Apple Inspiration (Rams 2011 인터뷰 인용) ·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 'Apple has achieved something I never did' - Dieter Rams · Dezeen / Rams (2018 film) — Gary Hustwit 감독 · Wikipedia / hustwit.com

맺음말
바이마르의 선언문에서 애플의 계산기 앱까지, 이 원칙은 세 번 문을 닫을 뻔했다.나치가 바우하우스를 닫았고, 재정난이 울름을 닫았고, 소비주의에 대한 회의가 람스 자신을 몇 번이고 멈춰 세웠다.그때마다 원칙은 사람을 옮겨 타며 살아남았다.그로피우스에서 막스 빌로, 막스 빌에서 람스로, 람스에서 아이브로.'애플은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뤄냈다'는 람스의 말은 패배 선언이 아니라, 원칙이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확인에 가깝다.적게, 그러나 더 낫게 — 백 년 전의 그 말은 지금도 어느 회사의 화면 속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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