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매주 하나의 미술사 이야기인스타그램KOEN
Vol. 122026-07-16지난 호 보기

거울에 비친 자는 누구인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 「시녀들」 속 세 겹의 시선

이어지는 이야기 3편읽는 시간 약 7분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
이야기 시작

1656년, 마드리드 알카사르 궁전의 '왕자의 방'. 다섯 살 난 왕녀 마르가리타가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서 있고, 그 옆에는 붓과 팔레트를 든 화가가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 있다. 화가는 캔버스가 아니라 이쪽을, 그림 밖의 우리를 보고 있다. 뒷벽에는 그림들 사이로 작은 거울 하나가 걸려 있고, 그 안에 두 사람의 상반신이 희미하게 비친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 그들은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가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인가, 아니면 화가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 위인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은 350년이 넘도록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화가의 가슴에는 붉은 십자가 하나가 있는데, 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는 아직 그 십자가를 가질 자격이 없었다. 나는 이 그림 앞에 세 개의 다른 질문을 들고 차례로 서보기로 한다.

01

지워진 자리, 거울 속 두 사람

거울은 크지 않다. 뒷벽에 걸린 다른 그림들 사이에 끼어, 자칫하면 지나칠 만한 크기로 걸려 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상반신, 어깨 위로 잘린 두 개의 얼굴이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이를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로 읽어왔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이렇다. 왕과 왕비가 지금 이 순간 벨라스케스 앞에 서서 초상을 위해 자세를 잡고 있고 그림은 바로 그 부부의 시점에서 본 방 안의 풍경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을 따르면 거울에 비친 자리는 곧 지금 그림을 보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잠깐 스페인의 국왕이 된다.

그러나 모든 학자가 이 편안한 결론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미술사학자 H. W. 얀손과 조엘 스나이더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거울이 비추는 것은 방 안에 실제로 서 있는 왕과 왕비가 아니라, 벨라스케스가 지금 그리고 있는 캔버스, 그러니까 그림 속 그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왕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화가가 완성해가는 초상화 한 장을 옆에서 곁눈질하고 있을 뿐이다. 같은 거울, 같은 두 얼굴을 두고 해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다. 벨라스케스는 어느 쪽으로도 확정해주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불확실함 그 자체다. 왕과 왕비가 우리 옆에 나란히 서 있는지, 아니면 우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인지, 이 그림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다. 「시녀들」 앞에 선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저 거울 속 자리에 자신을 세워보게 된다. 세대를 거듭한 관객들이 그 자리에 서왔고,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언젠가 그 앞에 서면 같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림이 관객에게 건네는 유일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눈으로 이 방을 보고 있는가.

왕과 왕비가 우리 옆에 서 있는지, 우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 그림은 끝내 답하지 않는다.

소장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소장, 1656년작품 자세히 보기 →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H. W. 얀손 · 조엘 스나이더 (거울이 왕과 왕비가 아니라 벨라스케스가 그리는 캔버스를 비춘다는 대안 해석) · Wikipedia — Las Meninas

02

붓을 든 채로 이쪽을 보다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 · 디에고 벨라스케스

화가는 그림의 한쪽 구석이 아니라 화면의 왼쪽 절반을 통째로 차지하고 서 있다. 손에는 붓과 팔레트, 몸은 거대한 캔버스 뒤에 반쯤 가려져 있지만 얼굴만은 정면으로 이쪽을 향한다. 그리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17세기 궁정화가가 왕실 인물들과 나란히, 그것도 같은 크기와 같은 위엄으로 자신을 그려 넣는 일은 흔치 않았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을 그림의 배경이 아니라 그림의 한 축으로 세웠다.

미술사학자 스베틀라나 알퍼스는 이 선택을 화가의 지위를 향한 주장으로 읽는다. 왕실과 귀족들 곁에서 작업 중인 화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벨라스케스는 화가 자신과 회화라는 예술 모두를 위해 높은 지위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가 증명하려 한 것은 회화가 손으로 하는 기술, 즉 기계적 기예가 아니라 정신이 하는 자유학예에 속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구분은 사소하지 않았다. 벨라스케스가 그토록 원했던 산티아고 기사단은 규정상 '기계적' 직업에 종사한 사람의 가입을 막고 있었다. 미술사학자 매들린 카는 이 그림이 벨라스케스가 '장인도 상인도 아닌, 궁정의 관리'임을 입증하려는 시도였다고 적는다.

실제로 그의 신분은 취약했다. 스페인의 혈통 순수성 심사는 가계에 유대계나 무어계, 혹은 상업 종사의 흔적이 있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고, 벨라스케스는 기사단 가입을 신청하며 실제보다 높은 하급 귀족 혈통을 주장해야 했다. 조부모 대에 상인이나 개종 유대인이 있었으리라는 추정도 따라다녔다. 그러니 「시녀들」은 단순한 궁정 풍속화가 아니라, 화가가 자신의 평생 경력을 눌러 담은 이력서에 가깝다. 왕과 왕비를 그림 속에 들이고 그 곁에 자신을 세운 이 구성 자체가 이미 하나의 청원서였다.

화가는 자신을 왕실의 초상 곁에 세움으로써, 그림이 아니라 화가라는 신분 자체를 걸작으로 만들려 했다.

소장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소장, 1656년작품 자세히 보기 →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스베틀라나 알퍼스 · 매들린 카 (회화의 지위와 화가의 신분 상승 논변) · Wikipedia — Las Meninas

03

그림이 끝난 뒤에 그려진 것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 · 디에고 벨라스케스

벨라스케스의 가슴에는 붉은 십자가가 선명하다. 산티아고 기사단의 표식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완성된 것은 1656년이고, 벨라스케스가 실제로 그 기사단에 가입한 것은 국왕의 칙령에 따라 1659년 11월 28일이었다. 그림보다 삼 년이나 늦다. 화가는 자신이 아직 갖지 못한 명예를 미리 자기 가슴에 그려 넣은 셈이 되는데, 여기서 오래된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8세기 스페인 화가 열전을 쓴 안토니오 팔로미노는 1724년의 기록에서, 이 십자가를 국왕 펠리페 4세가 벨라스케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 덧그려 넣도록 지시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팔로미노는 한 문장을 덧붙인다. '어떤 이들은 국왕이 직접 그것을 그렸다고도 말한다.' 왕이 붓을 들어 죽은 화가의 가슴에 직접 명예의 표식을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다. 팔로미노 자신도 이를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어떤 이들은 말한다'는 전언의 형태로 적었다. 산티아고 기사단조차 규정상 받아들이기 까다로워했던 화가에게, 왕이 손수 붓으로 명예를 되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벨라스케스가 살아서 그 십자가를 가슴에 달 자격을 얻기까지, 그는 혈통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자신의 가계를 실제보다 부풀려야 했고, 결국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특별 사면을 받아서야 기사단의 문턱을 넘었다. 규정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못하고 예외를 얻어 들어간 자리였다. 그러니 왕이 직접 그렸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 십자가는 애초에 규정 바깥에서 주어진 명예를 상징한다. 그림 속 화가는 살아서 받지 못한 것을 죽은 뒤에야 가슴에 걸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화가가 살아서 넘지 못한 문턱을, 그림 속 화가는 죽은 뒤에야 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장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소장, 1656년작품 자세히 보기 →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안토니오 팔로미노, 「스페인 화가 열전」 (1724) — 국왕이 사후에 십자가를 그려 넣게 했다는 기록 · Wikipedia — Las Meninas / 안토니오 팔로미노 기록 및 산티아고 기사단 가입 경위 (혈통 심사·교황 사면) · Wikipedia — Diego Velázquez

맺음말
세 개의 질문 앞을 차례로 지나왔다.거울 속 두 얼굴이 누구의 시점을 대신하는지, 화가가 왜 자신을 왕실의 한가운데 세웠는지, 가슴의 붉은 십자가가 언제 그려졌는지.이 셋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모인다.이 그림에서 누가 보고, 누가 보이고, 누가 그 사이의 자격을 가졌는가.벨라스케스는 살아서 산티아고 기사단의 문턱을 겨우 넘었고, 그나마도 혈통을 부풀려서야 가능했다.그러나 캔버스 안에서는 처음부터 왕과 나란히 서 있었다.붓을 든 손으로, 그는 규정이 허락하지 않는 자리를 먼저 그려두었다.왕이 정말 그 십자가를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다만 화가가 자신에게 그 자리를 먼저 허락했다는 것만은, 캔버스에 남아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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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사실과 해석은 아래 전문가·기관의 공개 자료에 근거합니다. 자세한 해설은 각 원본에서 확인하세요.